신령한 집(2) 위기는 주님을 만날 기회 (욥기 42:1-6)
지난 시간 말씀드린 대로 ‘신령한 집’이란 우리 마음에 지어지게 될 ‘마음의 성전’을 의미합니다. 마음의 성전이 지어지면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성전 삼고 영원히 거하시게 됩니다. 우리는 성전이 되고,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벧전 2:5).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지어지게 될 신령한 집 곧 마음의 성전에 대한 설계도를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간의 노예생활을 끝내고 출애굽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 선지자를 통해 주셨습니다(출 25:8-9).
성막을 보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울타리입니다.
울타리는 길이가 50m이고, 폭이 25m이며, 높이는 2.5m입니다. 처음 울타리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울타리가 너무 높아서 그 울타리를 넘지 못해 한계를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울타리가 상징하는 것은 바로 주님입니다. 세상과 성막을 구분하는 주님의 거룩함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울타리는 죄와 분리시킵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 들어오면 거룩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울타리가 너무 높아 어떻게 넘어가야 하는가 고민할 수 있지만 동편에 문이 하나 열려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소망이 됩니다.
우리 안에 신령한 집 곧 마음의 성전이 세워지려면 우선 문이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요한복음 10장 9절에 보면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양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과하지 않고는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주로 위기 가운데 만남을 갖게 됩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사람들은 모두가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그 위기를 만났을 때 주님을 찾던지 아니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이 선택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전에 전도를 받았던 사람이라면 주님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 14:6)는 말씀이 생각이 나서 주님께로 돌아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런 것도 없는 사람이라면 절망하여 아무 것도 하지 못하거나 마지막 죽음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보기도가 쌓여 있는 사람은 그런 위기의 순간에 쉽게 주님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의 경우 세상에 빠져 있다가도 위기의 순간에 주님을 찾게 되고 주님을 쉽게 만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부모의 중보기도가 그만큼 많이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자녀의 특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전도자의 중보기도가 많이 쌓여 있는 VIP의 경우도 위기의 순간에 쉽게 주님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전도대상자를 위한 기도가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도할 때 “힘들고 어려울 때에 주님이 피할 길이 되신다는 것을 기억하세요”라는 말을 남기는 것은 아주 효과적으로 작용될 수 있습니다. 그런 위기의 순간에 그 말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위기가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그 위기가 주님을 만나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선물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는 무엇일까요? 욥과 같이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릴 때입니다. 재물을 잃어버리고, 자녀를 잃어버리고, 건강을 잃어버리고, 행복을 잃어버리고, 명예를 잃어버릴 때와 같은 상황들입니다. 이런 것들 중 하나만 잃어버려도 사람들은 힘들어 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해결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어버리게 되면 사람들은 절망하게 됩니다. 욥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느끼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기에 그는 더욱 절망했습니다. 그때 욥은 절망 가운데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욥은 자기에게 닥친 고난의 의미를 알지 못했기에 하나님을 원망하며 탄식하며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비록 욥은 자기는 의롭고 하나님은 불의하시다고 하며, 하나님이 계시면 나와 변론하자고까지 하며 하나님 앞에 큰소리 치고 많은 말로 하나님을 원망하였지만, 결국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욥은 하나님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친히 음성을 들은 적도 없었습니다. 단지 조상들로부터 전해지는 말에 의해 하나님을 알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인생의 위기의 순간에 그 절박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울타리를 넘어 성소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과 같은 절박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위기의 순간에 주님을 붙잡고 도와달라고 의지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문을 발견하여 주님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최초의 길인 것입니다. 불신자라 할지라도 위기의 순간에 주님을 찾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이 문을 두드리게 되면 구원의 문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주님을 찾고 의지하는 믿음이 그들의 영혼을 살리게 됩니다. 이 믿음이 신령한 집을 세우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은 넓은 문이 아닙니다. 좁은 문입니다(마 7:13-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기 때문에 사탄은 우리가 넓은 문으로 가도록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중보기도로 그들을 도울 때 그들은 유혹을 이기고 좁은 문을 두드리게 되고 주님 안에 들어와서 모든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구원 받을 믿음도 죄사함의 은혜도 다 주님에게서 오는 선물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 힘으로는 얻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지 내가 노력해서 취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 그 한계를 뛰어넘는 어떤 힘이 필요할 때 주님께서 그 위기의 순간에 손을 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짜로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값싼 것이 아닙니다. 우리 힘으로는 갚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비싸서 우리에게 지불하도록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과 은혜는 전적으로 위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선물이기 때문에 갚을 필요가 없습니다. 선물은 선물로서 감사함으로 받고 누려야지 만일 은혜를 갚기 위해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은혜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막에서 울타리도, 문도 모두 주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신령한 집은 허물어지지 않는 금이나 은과 같은 재료로 지어야 합니다. 곧 주님이라는 재료로 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재료로 삼아 우리 안에 신령한 집 곧 성소를 세워야 허물어지지 않지, 다른 것을 기초로 세우면 곧 무너지게 됩니다. 주님을 재료로 삼아 성소의 기초를 삼으면 우리 안에 세우는 신령한 집의 기초도 튼튼해지고 주님이 우리의 심령 가운데 머물 수 있는 성소가 지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주님이 거하실 신령한 집으로 지어짐으로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